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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난한 일반 회사원이 목조주택 건축주가 된 후기 III-5. 골조 공사

1 안락삶 6 256 08.29 07:16

5. 골조 공사


목조 시공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가장 많은 공사비를 요하고(내 경우는 그랬다) 하루하루 현장의 모습이 드라마틱 하게 바뀌는 단계이다. 사장님께서 현장에 투입된 목수 세 분은 모두 팀장급이라고 하셨다. 

시공사와 첫 미팅이 있던 날 구조재로 쓰일 투바이 목재에 대해 사장님께서 강도에 문제는 없지만 옹이와 피죽이 간간이 있는 2등급을 쓸 거냐 깨끗한 1등급을 쓰길 원하냐 물어본 적이 있다. 잘 몰랐던 나는 첫 집인데 깨끗한 것이 좋겠지 하며 1등급으로 해달라고 했다. 이 글을 쓰며 현장 사진을 다시 보는데 어라? 투바이목재에 JAS 표기가 있긴 한데 2級이라고 스탬프가 찍혀있다. 시공사에서 보내온 견적에도 '캐나다산 1등급 구조재'로 명기돼 있는데 왜 협의된 것과 다른 물건이 와 있을까... 2級이면 2&Better 아닌지? 의문을 가져보지만 이미 공사는 끝났다. 골조를 올릴 때 물어볼 걸 또 후회가 남는다. 아무래도 김후회로 개명을 해야겠다. 

 

투바이 목재 입고.jpg↑집에 사용된 투바이 목재들이다. 제조사도 여러군데이며 등급 표기도 조금씩 상이하다.

 

 

외기에 맞닿는 벽은 2×6 구조재로 실내 벽은 2×4 구조재로 제작하는데 목수들은 한 분씩 한 벽면을 맡아 뚝딱뚝딱 16인치 간격으로 stud를 세우고 개구부를 만들고 header를 조립하며 놀라운 속도로 벽을 세웠다. bottom plate의 목재끼리 이어 시공하는 부분이나 backer가 세워지는 부분에 미세한 틈이 생기는 곳은 따로 요청드리지 않았는데 우레탄 폼을 쏴 주셨다. 또 따로 사전에 협의되지 않았으나 후에 시공될 OSB 합판 하단부를 물과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mudsill에 투습방수지를 스테이플러로 선시공 해줬다.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다. 밝은 목재들이 나란히 예쁘게 정렬돼있는 프레임이 뿜어내는 향은 사람을 황홀하게 만든다. 

 

토대목 폼시공 투습방수지 선시공.jpg↑bottom plate 틈에 우레탄 폼 시공, mudsill에는 투습방수지가 선시공 되었다.

 

목 골조 향.jpg↑이 단계에 현장을 방문하면 은은한 나무향이 가득하다.

 

골조공사를 얼마 앞두고 사장님께 내부 가변형방습지 시공 뜻을 비추며 골조 시공 시 backer나 top plate에 가변형방습지를 선시공할 것을 요구했다. 소정의 인건비가 증액 필요하다는 답변이 올 줄 알았는데 "목수들이 상그러워 할거라서..." 안된다고 한다. 이어 거듭 가변형방습지(사장님은 항상 내부 타이벡이라고 표현하셨다) 생략해도 자신이 시공한 목조주택은 따뜻하고 난방비도 적게 든다며 그런데 투자하느니 창호를 좋은 것으로 업그레이드 할 것을 추천한다. 

나는 유별나게 추위를 타는 체질이어서 가변형방습지 시공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목조주택을 짓더라도 만에 하나 물과 습기 때문에 골조가 상하게 되는 경우를 최소화하고 싶었다. stud와 OSB합판 그리고 중단열재인 글라스울까지 습기로부터 지켜냄으로써 보다 좋은 벽체&지붕 컨디션을 만들어 주고 싶고, 벽과 지붕의 기밀성을 높혀 미세먼지나 작은 해충들의 침입 가능성을 낮추며, 덤으로 기밀해진 만큼 단열측면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가변형방습지 시공을 원한 것이다. 아무튼 골조 단계 가변형방습지 선시공을 시공사에서 거부한 관계로 이후에 또 다뤄지겠지만 셀프로 가변형방습지 시공 시 매우 애를 먹었다.

 

가변형 방습지 선시공 요구 그림.png↑가변형방습지 선시공에 대해 이해를 못 할까 봐 꾸역꾸역 그려보았다.

 

또 후회되는 것이 자재에 대한 상세 견적을 요구하지 않은 것과 잉여 자재에 대한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협의를 안한 점이다. 받은 견적에는 골조공사의 경우 항목에 '평당 재료 단가 35만원'으로 적혀있을 뿐이다. 공사를 함에 있어 로스율까지 감안하면 자재는 충분하게 발주될 것이고 공사가 끝나더라도 새것 그대로 남거나 중고거래가 가능할 정도의 상품 가치 있는 품목도 있을(특히 목재나 철근이 그러할듯하다) 것이다. 분명 건축주는 견적서에 명기된 대로 재료비와 인건비를 지불한다. 그러므로 남은 자재는 건축주의 소유 아닌가? 나는 안타깝게도 잉여 자재에 대해 값을 쳐서 되사갈지 아니면 폐기 처리를 할지에 대해 논의해 본 적이 없다. 가공하고 남은 자투리 stud나 OSB 등에 대해서만 폐기할지 보존할지에 대해 사장님으로부터 문의 받은 기억만 있다.

 

사장님께 자재 발주량을 산정하기 위해 시공사에서 사용하는 tool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래야 로스를 줄여 회사의 이윤도 늘어날 테니 당연히 있을 줄 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단다. 골조공사 전SketchUp을 이용해 도면대로 기초 면과 골조까지 그려봤다. 우리 집의 목구조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함이 컸고 구조에 대해 공부는 깊게 안 해봤지만 16인치 간격으로 stud도 세워보고 header, corner, backer 그리고 ceiling joist와 rafter, ridge beam까지 되는대로 만들어 봤다. 시공사 사장님은 건축주가 이런 걸 그려본다는 게 신기하셨는지 그 SketchUp file을 자재확인차 송부해달라고 요청하셨다. 

 

우리집 목구조 예상도.png↑SketchUp을 이용 목구조 예상도를 그려봤다.

 

건축사의 도면 말고 시공사에서 쓰는 골조 도면이나 시방서도 의외로 없다고 한다. 현장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디테일을 정해 시공한다고 한다. 실제로 도면에는 없던 ceiling joist 위로 strong back 4 set 와 'ㄷ'자 형상으로 파인 지붕 facia 쪽엔 현장 제작 빔이 시공되기도 했다.

 

스트롱백 사진.jpg↑strong back 시공 사진 (빨간색 동그라미 부분)

 

제작빔.jpg↑투바이 구조목과 OSB 합판을 이용한 현장 제작빔 (파란색 동그라미 부분)

 

 S****** Strong-Tie라는 회사가 있다. 목조주택의 보강 또는 연결 철물을 제작하는 회사로 창립 60년이 넘은 이 분야에서 거의 독보적 위치에 있는 글로벌 회사이다. 비용적인 한계로 이 회사의 모든 철물을 쓸 수는 없으니 아래 그림과 같이 세 가지 품목이라도 시공해주십사 요구했고 사양에 맞는 하드웨어도 첨부했더니 사장님께선 이미 챙겨왔다고 답변 주신다. 그리고는 타 현장에서 이런 철물을 시공하는 모습은 보여주기 식(홍보를 위함이라고 이해했다)이고 우리 현장은 블로킹과 많은 수의 못으로 시공했기 때문에 엄청 짱짱하다고 했다. 말씀하신 짱짱함이 하중을 견뎌내는 힘인지 들리는 힘에 저항하는 것인지 미처 되묻지는 못했지만 제조사의 오랜 역사가 보여주듯 R&D나 품질면에서 뒷받침돼왔을 것이므로 무게나 부피 대비 철물을 쓰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았다. 철물 단가가 아주 비싼 것은 아니니 건축사나 구조도면에서 권하는 철물은 꼭 정품으로 시공하길 권한다. 사장님께서 이미 챙겨왔다는 철물이 현장에서 보여 한번 만져 보려고 가까이 갔더니 S社 제품이 아니고 국내 M社 제품이더라. 굳이 회사명을 번번이 천지인 키보드로 풀네임 타이핑해가며 요청했는데 타 회사 제품을 가져오시다니...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래 해준다는 게 어디냐 하며 잘 시공해 주기만을 기도했다.

 


 

심슨스트롱타이 요구1.png↑사용하면 좋을것 같아서 S社 철물 시공을 요구했다

 

 

 

심슨스트롱타이요구2.png↑사용하면 좋을것 같아서 S社 철물 시공을 요구했다

 

우연히 집을 리모델링 하는 영상을 시청하게 되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건축주로서 지은 집을 딸이 리모델링 하는 경우로 흐릿하게나마 기억을 하는데 철거 과정에서 그 아버님이 쓴 상량문을 발견하자 딸이 오열하는 장면을 보곤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나도 아버지와 일찍 이별했기도 하고 나이 들수록 슬픈 장면을 보기가 유독 힘들어지는 것 같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인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주택 신축을 기회 삼아 상량문을 써서 아들에게 일종의 깜짝 선물처럼 몰래 남겨놓고 싶었다.

 

상량문.jpg↑인두기로 상량문을 써 봤다. 저래 봬도 점묘법이다.

 

ridge beam이 시공되는 날 미리 맞춰 놓은 시루떡과 막걸리 만으로 조촐하게 상을 차려 절을 올렸다. 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문제없이 집을 지어주십사 하는... 아마도 건축주라면 누구라도 빌법한 평이한 내용을 속으로 읊으며.


※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1) 공사전 가견적 외에도 공사가 완료된 후 모든 자재에 대한 스펙, 비용, 수량이 포함된 상세 견적서 주시나요?

 (2) 잉여자재에 대한 비용처리는 어떻게 되나요?

 (3) stud는 어느 나라産 몇 등급으로 시공할지 미리 논의하시고 부족분 추가 발주 혹은 시공사 재고분(만약 있다면) 소진 시에도 그 스펙에 대해 사전 협의될 수 있게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 좋아요.

 (4) OSB도 캐나다산, 유럽산, 남미산, 아시아산 등 다양하고 원산지별로 단가 차이도 있다고 합니다. 상세히 논의해야겠지요?

 (5) 골조 공사 시 시공사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보강 철물은 무엇인지 추가 철물을 요구하면 증액되는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협의해야 건강에 유익합니다.

 

<다음 III-6. 단열 공사와 house wrapping 으로 찾아뵙겠습니다!> 

Comments

감사합니다!
2 파란집연구소 08.29 10:33
오늘도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M 관리자 08.29 13:10
이번 글은 따로 언급할 것은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7 joel 08.29 16:07
저도 집을 지으면서 건축일기란 걸 작성을 했었지만... 넘사벽이시네요...
필력도 대단하시지만, 사진이 너무 눈에 익어서...
위치나 공사 중 사진 눈에 익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희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보이더군요.(바로 밑 유치원도 다녀서 눈에 더 익었네요.)
이런 우연히 하며 참 반가웠습니다.
1 안락삶 08.29 17:31
오늘도 시간내어 읽어주신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joel 님
저희 옆 쪽 주택마을에 계신가보네요. 반갑습니다 ^-^
오가다 만나면 인사 나누어요!
7 joel 08.29 18:09
네. 유치원 반대편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