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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집짓기에도 순서가 있더라
땅은 샀고 그다음은? 무조건 돈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는 사람은 숨만 쉬어도 돈이 필요한데 집을 지으려면 당근 돈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땡길수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나름 성실히 살아온 것 같지만 나의 현재 자산과 영끌하여 부풀려질 수 있는 자산 한계치를 숫자로 마주하니 살아온 인생의 성적을 확인하는 기분이다. 선악을 떠나 티브이에서 언급되는 인물들의 이름은 나의 숫자보다 수백수천 배 많은 금액과 더불어 언급되던데 그에 비해 내 이름 옆의 숫자는 한없이 작고 간결하기만 했다.
가용가능한 자금이 확인되었다면 건축주가 희망하는 주택의 도면, 가급적 구체적이고 디테일이 표기된 도면, 나라에서 그렇게 지어도 된다 허락한 도면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와 같이 "주택 왜 지어? 아파트가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 하는 건축사 말고 건축주의 의도를 공감할 줄 알고 취향을 파악하여 건축 전문 지식을 더한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건축사를 만나셔야 한다.
도면이 완성되면 도면에 충실하게 못 하나 스크류 하나 타카질 하나 성실히 시공하는 시공사가 필요하다. 어렵겠지만 정당한 적정 이윤을 추구하고 소통 능력이 있으며 문어발식 현장관리를 하지 않는 우직한 곳을 엄선해야 한다.
1. 돈돈돈
'돈 얼마 갖고 있나?'
현금을 곁에 두둑이 쌓아두고 고민 없이 주택 신축을 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다들 빠듯하고 낼 거 내면 얼마 없지 않은가? 우린 돈이 없다.
당시 나는 자금 상황은 어떠했는가? 잘 모른다. 확실한 것은 많지 않다. 부유하지도 않으면서 악착같이 가계부를 쓰거나 쿠폰, 카드 혜택을 적극 활용하려 들지도 않고 재테크에도 어둡다.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은커녕 빚만 물려받아 디폴트로 매달 은행느님에게 따박따박 이체당하며 절제되고
근검절약하는 금융노예의 삶이 강제됐다. 예금통장에는 마지막 잎새와 같은 기천만원 찍혀있고 숙성중인 우리사주 약간 그 외 다른 자산은 없다. 거주 중이었던 아파트는 전세이며 보증금이 약 1.6억원. 토지매매대금은 3.5억원. 금융기관에서 토지매매자금만 최대한 융통하고 건축비를 아파트 전세 보증금으로 퉁칠수 있다면 단독주택 신축의 꿈은 ★ 이루어질 수 있겠다.
그래서 일반적이지 않게 설계사무소의 건축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 시공사를 먼저 찾아보게 되었다. 얼마쯤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지 예산 범위를 알아야 지를 것 아니겠는가. SketchUp 체험판을 이용해 필요 최소한의 공간을 원하는 대로 집의 형태를 그려봤다.
토지가 경사져서 독립기초로 집을 만들어 봤다.
몇 안 되는 인맥 중 프랑스건축사와 한국건축사 자격이 있는 친구가 있어 집을 그릴 때마다 보여주며 어때 어때?하며 물어봤는데 이때만 해도 정말 내가 실행에 옮기리라 생각을 못 한 것인지 별 반응도 없고 구체적인 조언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더욱 시공사를 검색하고 찾아가서 가예산이라도 추산해 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순서는 잘못됐고 후회가 남는 건축주가 되기 쉬우므로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땅값은 온라인 상 혹은 근처 공인중개사 사무실만 찾아가도 쉽게 알 수 있다. 설계비도 검색하면 바로 나오려나? 설계비를 간과하거나 발생해도 얼마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계실 수도 있다. 감리비용은? 큰 파이를 차지하는 건축비는? 건축비 외 부대비용은? 부대비용에는 대체 어느 항목이 있는 거야? 답답함이 밀려올 것이다.
뒷장에 대략적이나마 나의 경우 소비된 비용을 공유드릴 예정이다. 이 비용이 거의 최소한의 금액으로 알고 추가되는 옵션 혹은 고급화하는 자재만큼 상승되는 것으로 반영하여 예산을 추정해보면 아주 큰 오차는 없을 것이다.
2. 설계가 우선
사후에 느꼈지만 모든 건축물은 설계자 즉, 설계도면이 중심이 되어 시공되고 감리되어야 마땅하다. 때문에 주택 신축의 첫 단추는 설계사무소의 건축사와의 만남이어야 하지만 위와 같이 건축예산이 얼마나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시공사를 먼저 컨택하는 우를 범했다. 터무니없이 돈이 없는데 집을 지를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며 당시 나의 선택을 합리화해본다.
과거의 나도 그랬듯 이 시장을 모르는 주변인들은
'설계? 그거 시공사에서 그냥 그려주는 거 아니야? 건축비에 포함?'
이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실제로도 '설계비 무료'라는 문구로 홍보하는 시공사들도 몇 보였다. 아마도 이런 곳은 설계비가 건축비에 녹여져 있거나 주택 표준설계도면과 같이 샘플 모델을 보유하고 출도 작업에 있어 설계 공수가 덜 들어가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그러나 이럴 경우 집이 시공될 부지의 콘디션은 다 다를 것이고 기초나 구조설계는 누가 하며 책임의 주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나의 경우 설계비는 900만원 가량 들었다. 토지매매자금부터 건축비까지 총 예상금액으로 봤을 때 적지 않은 돈이고 실제로 벽이 들어서고 지붕이 되는 시공 비용이 아닌 종이에 2D로 표현되는 비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과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건축, 구조, 기계, 전기 도면과 구조계산서 등의 도서량을 고려하고 이 중 상당량은 외주(한 설계사무소에서 모든 도면을 다 그리지 않음) 의뢰를 해야 해서 그 비용을 제하면 언급된 금액이 많은 비용은 절대 아니라고 한다.
누구든 주변에서 단독주택 신축을 예정하고 있다면 무조건 좋은 건축사를 만나 협의하고 이곳에 어느 정도 비용을 들일 것을 권하고 싶다. 건축사가 건축주와의 긴밀한 소통으로 니즈를 파악하고 협의된 디테일이 표기된 도면을 근거로 감리 계약까지 해야 시공사가 독단적으로 공사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지불하고도 마냥 을이 되는 이 공급자 우위의 시장에서 한없이 약하고 외로운 건축주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편 '인허가방' 이라고 불리는 설계사무소도 있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우리 동네의 경우 450만원 정도)으로 인허가에 문제만 없게 도면을 생산해 주는 곳이라고 한다. 뭐... 도면에 표기되지 않거나 애매한 디테일은 시공사가 다 알아서~인 그런 컨셉같다. 건축주가 전문지식이 있고 신뢰 가는 시공사를 만나 소통이 잘 되는 경우이면 이러한 설계사무소를 찾아 비용을 세이브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지만 우리는 이 분야에 문외한 아니던가. 고객의 마음을 잘 읽는 주택 분야 전문 건축사를 만나야 한다.
그렇다고 매스컴에 자주 등장해 유명해진 건축사는 설계 비용만 몇 천만원은 우습게 뛰어넘겠지만 의뢰량도 많아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는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의뢰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공부하여 꼭 찾고자 하는 건축사를 만나 첫 단추를 잘 끼우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골조의 종류와 무관하게 제대로 시공한 집이 좋은 집이다'
시간이 지나서 곱씹을수록 옳은 이야기이다. 진리이다.
단독주택은 크게 RC, 목구조, 철골구조로 나뉘어 지는데 시공 기간이 비교적 짧고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은 경량목구조 집을 짓기로 했다. 건강이 급 안 좋아진 배우자, 이제 생후 40여개월 된 아이를 생각하니 시멘트의 독성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고 철골구조는 무겁고 열교(熱橋)측면에서 목재보다 불리해 땡기지가 않았다. 이 분야도 복잡하게 얽힌 이권에 따라 시멘트가 좋다 그렇지 않다, 목조가 최고다 아니다 갑론을박이 있으나 여기저기 조금이나마 공부해 보고 종합해 본 결과 경량목구조가 가장 경재적이고 인체에 가장 덜 해로운 공법이라고 판단되었다. 오로지 물(습기)이 천적이며 이것만 잘 방어하면 나쁠 것이 없어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량목구조 주택은 대부분 북미지역의 공법을 들여왔다고 한다. RC나 벽돌구조로 단순화된 단독주택 시장에 시공부문에서 북미의 목구조를 국내에 도입한 것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자리 잡아 왔나 보다. 건축을 전공한 친구도 학부 커리큘럼에는 따로 '목조건축'이 없다고 한다. 건축학개론 정도의 과목에서 한 챕터에 걸쳐 간략히 소개된다던데 그래서인지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 목조주택을 전문적으로 설계할 줄 아는 건축사가 적다고 한다.
우리 집의 경우에도 시공사가 도면을 항상 끼고 보면서 집을 짓지는 않았다. RC도면 베이스로 목구조의 옷을 덧입힌 것인지 시공사 입장에서 도면만 보고 골조를 세우고 모든 마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한 시방이 없나보다. 이러한 현실로 미루어 짐작건대 우리나라에서 목조주택은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건축사 입장에서 목조든 RC든 소규모 건축물은 돈이 안돼 비인기 종목이며 도면에 표기되지 않은 영역은 시공사가 결정하는 대로 시공이 되니 더 그런 듯하다.
3. 시공사는 어떻게
앞서 언급했지만 목조가 좋고 철골은 나쁘다가 아니라 구석구석 꼼꼼하게 제대로 지은 집이 하자가 없고 좋은 집이다. 말은 쉽지만 그 '제대로' 시공하는 곳을 찾기가 참 어렵다. 온라인으로 검색하면 종합 건설사부터 소규모 건축물 시공업자까지 뭘 눌러서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사이트들이 나온다. 홈페이지 사용자 인터페이스부터 시크하고 세련된 곳이 있는가 하면 세기말 컨셉이야 뭐야 싶을 정도로 올드 한 곳이 있기도 하고 그냥 포털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형태로 혹은 개인 SNS를 홈페이지로 삼는 시공사도 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다른데 이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그랬지만 홈페이지가 깔끔하고 포트폴리오에 지은 집들이 모던하거나 동영상으로 빠르고 간략하게 공정을 훑으며 화사하게 완성된 집의 내외부를 짠! 하면 보여주는 시공사에 관심이 가기 쉽다. 그러나 이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공산이 크다.
짓고자 하는 집의 골조가 정해졌다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공부하시라. 앞으로 계속 강조할 것 같은데 기초, 구조, 단열, 기밀, 방수, 설비, 전기 등 최대한 많이. 난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알아본 결과 시공사와 계약 시 상세히 확인하고 협의했어야 하는 많은 항목들을 간과하였다. 공정별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런 공법으로 어떠어떠한 자재를 사용해서 마감은 A 방법으로 Tape은 뭘 사용하고 석고보드 체결은 Screw로 하길 원하는데 경험이 있나? 아니면 그렇게 했을 때 자재비나 인건비 상승은 얼마나 되며, 이것들을 반영하여 예상 견적 자료로 건축주에게 내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시공사인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공사가 편하고 돈 되는 방향으로만 집을 시공한다. 그 방향이 건축주와 일치하면 문제 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세상에 나오고부터 거짓말 1위를 공고히 지키고 있는 것이 '밑지며 장사한다'라는 말이다. 건설사나 시공사는 러브하우스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무조건 저렴하게 집을 지어줄 이유도, 손해 보며 같은 값에 고급 자재를 쓸 리 없다.
평당 500만원, 600만원의 건축비를 맹신해서는 집이 완공되기까지 당황스러울 일이 꽤 생길 것이다. COVID-19 펜데믹 때와 같이 자재 공급 및 물류난으로 자재비가 급등할 수 있고 건축주의 변심으로 더 좋은 자재로 더 큰 창문으로 시공되길 바랄 수도 있으며 기초, 전기, 설비 등 도급업체에서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분야의 비전문가이고 역술인이나 예언가도 아니므로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최대한 상세하게 협의하고 계약을 해야 한다.
써놓고 보니 시공사를 굉장히 악의 축 정도의 경계할 대상으로 만든 것 같은데 아니다. 분명히 있다. 시공 품질을 올리고 더 낮은 비용으로 성능 좋은 집을 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시공사가 있고 동시다발적 시공 현장관리를 지양하고 적정 이윤을 추구하며 하자 없는 집을 아카이브 삼아 명성을 쌓아가는 회사도 분명히 있다. 일부 비양심적인 무리들이 그렇지 않은 회사까지 싸잡아 욕보이는 것이고 호구 하나 물어 폭리를 추구하는 무리들이 수틀리면 공사 중단, 잠적 그리고 하자 있는 집으로 건축주의 인생까지 병들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찾아보면 자신 있게 전체 시공과정을 동영상으로 게시한 곳도 있고 일반적인 시공 방법에 더하여 기초공사의 방수와 단열을 위해 추가 공정을 두는 곳, 단열층을 깨뜨리는 설비 루트를 최소화하거나 우회하는 시공을 하는 곳, 일정한 수압과 수온을 위해 더 진보된 배관 기법을 쓰는 곳 등 여러 방면에 거쳐 연구하고 적용하는 곳이 보인다.
모 협회는 건축에 대한 이론적인 자료까지 잘 정리하여 게시하고 좋은 집을 짓기 위한 노하우를 공유하며 이러한 방향에 함께하는 시공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듯하다. 적어도 이런 시공사들은 공사비의 일부 입금 받고 잠적하거나 잘못된 시공 방법을 고집하거나 한탕주의로 건축주로부터 말도 안 되는 폭리를 누리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 III. 나는 이런게 후회돼 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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