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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에 관한 얘기다.
필자는 진정한 의미의 여성혁명은 치마를 벗어던지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요 얘긴 좀 있다 이어가기로 하고, 본격적인 치마 얘기를 꺼내기 전에 치마가 세계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시기의 세계사적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일은 한무제의 밥상머리에서 시작되었다.
"남쪽 윈난성은 왠마이 정리가 된 것 같은디 말여 북쪽 훈족 이것들이 넘 깝쳐서 나가 시방 밥알이 목구녕으로 안 넘어가야? 건아 니가 아거들 데불고 가서 이참에 확실히 조사부러 알겄제?"
역사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한무제의 받은 '장건'은 건국초기라 수십년을 산적질과 쌈박질로 단련된 명 주력부대를 끌고 대월지(아프카니스탄)로 달려가 말 그대로 훈족를 조사버렸던 것이다.
흉노족의 일파라고 알려진 훈족은 북방의 강한 민족이었지만 달도차면 기운다고 오랫동안 비단길 가로막고 삥 뜯는걸로 등뜨시고 배부르게 살다보니 장건에게 줘 터질 수 밖에 없었다.
쫓긴 훈족이 어디로 갔겠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밀려서 중부 유럽을 관통해 내달린 김에 유럽의 서쪽 끝 네덜란드까지 쓸고 간 것이다.
훈족의 일부가 네덜란드에 남아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하여 네덜란드인의 피에는 훈족의 DNA가 섞여 있다.
한참 노략질에 몰두하던 훈족의 대빵 아틸라(이탈리아 사람들은 신의징벌, Scourge Of God이라 부름)는 집 털이도 대충 끝났고 장건도 이미 똥싸고 장안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틸라는 부동산 투자전문이 아니고 본업이 집털이였기 때문에 결코 털고 깡통이된 집에 머무는 법이 없다.
여기까지가 1장이다.
이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중세유럽사가 시작된다.
그니까 훈족이 장건에게 쫓겨오는 바람에 감자 캐먹으며 잘 살던 게르만족의 텃밭들이 졸지에 쑥대밭이 되었고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로마(서로마)도 작살이 나버린 것이다.
이 때 훈쪽에게 쫓긴 게르만족이 로마로 밀려들어간 사건이 바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다.
정확하게는 '게르만족의 대피난'이 맞을 것 같긴하데,,,
아뭇튼 이렇게 도망온 게르만족에게 이미 한차레 훈족에게 작살이 난 로마는 무너진 것이다.
일종의 빈집털이를 한 셈이다.
로마 빈집털이에 성공한 글로비스 1세는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이를 시발점으로 유럽의 카톨릭 부흥기를 열어간다. 이후 게르만족에 의한 광대한 프랑크 제국이 건설되고 이 프랑크 제국이 나눠서 오늘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분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근데, 이것이 대체 치마와 뭔 상관이 있냔 말이여?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이제 해보려 한다.
그니까 위 사건을 다시 정리하면,
한무제가 밥 묵다가 건이를 시켜 훈족 아거들을 조사버려라 시켰고 이에 장건이 훈족을 조사버렸는데, 장건에게 쫓긴 훈족 대빵 아틸라는 로마로 밀려 들어갔고 장건에게 당한 화풀이로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돌아갔다.
훈족에게 로마는 아작이 났고, 역시 훈족에게 쫓긴 게르만족의 대빵 카를로스가 빈집털이로 로마를 점령하고 프랑크제국을 건설했다.
로 정리될 수 있겠다.
근데 이것을 딱 한단어로 줄이면 치마사(治馬史)라 할 수 있다.
다스릴 치(治) 말 마(馬) 사기 사(史)
말탄 놈들이 말 안탄 놈들을 작살낸 기록이란 말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말이 문제이긴 문제다.
우리나라도 요즘 유라 말(馬) 때문에 청년들이 뚜껑이 열렸고 노승일 말(言) 때문에 나라가 뒤집어 졌으니 ....
유럽의 정사인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에 국한해서만 해석해도 이의 전쟁사적 의미는 명확하다.
즉, 바지입은 기마병과 치마입은 보병과의 전투였던 것이다.
지구 생물의 진화사에서도 그렇커니와 인류사에서도 가벼움을 선택한 속도가 견고함에 의지한 둔탁함을 이겼던 것이다.
지들 말로는 세계를 지배한 로마의 상징인 로마 전투병, 또 그 로마 전투병의 상징인 치마군복은 처참한 패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야 했다.
최소한 남성에서는 그랬다.
암튼 이 사건 이후로 이 족속들은 눈만 뜨면 빨리 내달리는데 몰두해 있다고 봐도 된다.
페라리가 그렇고 포르쉐가 그렇다.
더는 치마를 입는 남성은 없었다.
그런데,
그 패배의 상징물인 치마가 어느새 여성의 전유물로 둔갑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성의 뛰어남을 억누르고 남성의 지배력이 영속되기를 바라는 자들의 시커먼 음모가 없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최소한 이 선택이 여성의 자기 의지에 의한 결과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이 후 500백년이 지난 시민혁명의 상징인 프랑스혁명이 지난 후에도 여성들에게는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무료한 일상에 웃자고 한 소리니 이 억지스런 주장에 죽자고 고려사 오십페이지 넷째 줄 들이대며 달겨드시는 분 없기를 소원한다.^^
요즘 느끼는게 필연은 우연처럼온다는 말.
당나라때 주변정리하다가 그여파가 로마를 무너뜨리고. 촛불하나둘이 모여 이렇게되고.
삼년동안 잠겨있던 배가 돌아오고.
어떤 친구둘은 대통령이되어 만나고
다른친구 둘은 재판장서 원수라고 부르며 만나고.
좋은 날씨네요.
"역사는 필연에 대한 자각이다"
인터스텔라 서평 본문 중 ifree 왈
"우연은 단지 설명되지 못한 필연일 뿐이다"
http://www.phiko.kr/bbs/board.php?bo_table=z4_04&wr_id=1194
세번봤는데 이번 주말에 또 보고싶네요
제 강의 자료에 람다하우스에 대한 내용이 실렸는데, 저작권에 대한 것을 논해야 하는지 아니면 광고료를 논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작권라니요.
당치 않으십니다.
가난한 건축주에게 광고료를 거론하심은 흉노의 삥 뜯기를 연상시킵니다.
굽어 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