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시공/하자 등의 모든 질문 글은 해당 게시판에 해주세요.
여기에 적으시면 답변 드리지 않습니다.
협회에 건축 상담을 다녀왔습니다.
처음에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묵직한 공구통을 질질 끌고 내려와 밤새 오토바이를 주무르다 사람들이 잠에서 깰 때쯤 쫒기듯 정돈하고 올라와서 아침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민원의 눈길을 피한 늦은 밤시간,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한 바이크 정비였지만 지금은 성격상 남 못 맡기는 집착 비슷하게 되어버려 공구와 뜯어놓은 부품들을 그대로 둔 채 다음날 퇴근하고 다시 작업할 수 있는 작업공간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주택을 짓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였습니다.
집을 짓겠다고 결심하고 옆지기와 대화를 나눴더니 이런저런 기대와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빤스만 입고 집 안을 돌아다니기 이웃들에게 민망해 채광과 나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아파트 생활을 하다가 주택을 지어 살겠다는 발상은 굉장쓰 설레고 기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옆지기는 작은 마당에 풀도 키워 잡아먹을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고... 단 한가지 이유로 건축을 결심했더니, 집을 지으면 좋을 이유가 자꾸 늘어나게 되었죠.
집 지을 방법을 찾아보자는 마음에 조건을 검토해 대지를 구입하고, 건축비 마련을 위해 은행과 지자체를 찾아다니고, 건축 업체를 물색하고, 다른 건축주의 사례를 집요하게 찾아보며 지낸지 어느덧(?) 일 년이 다되어 갑니다. 오토바이 덕후는 몇 달째 공구를 놓은 채 스마트폰과 책에 파묻힌 건축 덕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늦은 밤 어두운 유혹과 위험으로 너절한 유흥가 길거리를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서 집을 지으신 건축주 분들은 건축하는 과정에서 건축업자의 요구에 이끌려 다니며 힘들고 불편했던 일, 자신이 원했던 집을 짓지 못했다는 아쉬움, 예상했던 비용보다 훨씬 많이 들어 힘들었던 경험을 토로하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집을 지으면 도적떼가 돈 냄새 맡고 벗겨먹으려 할 것이라는 말씀에 뒷통수에도 눈을 달고 거리를 살피는 불안한 행인처럼 건축업자의 말의 의도를 살피고, 집에 와서는 검색을 통해 교차 검증하며 정보를 얻어 왔습니다.
저희 부부의 상상속에 몽글몽글하게 자리잡은 한정된 예산의 작은 집은 현실의 땅 위에 아직 삽도 뜨지 않은 채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판단에 필요한 근거들은 구체적이지 않은 일반적인 것들이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네이버 카페의 한마디이거나, 업자의 의도섞인 주장이어서 결론은 나지 않는 채 뜨거웠던 건축욕망은 피로감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저희는 이런 심정으로 패시브건축협회에 상담을 의뢰했습니다. 가진 모든 정보를 토대로 결정사항을 만들어내고 기본도면으로 정리해 판단을 받아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어제 방문때 저희의 준비가 미흡했음에도 상황을 귀 기울여 들어주셨고, 구체적인 경험담을 말씀해 주셨고, 현실적인 조건을 함께 검토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나서 실현 가능성과 제반 조건들이 비교적 명료해졌고, 필요한 예산의 정도와 가능한지 여부를 업체에 문의해 주기로 하셔서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합니다...!!
저희는 홀가분한 마음을 갖고 거제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집을 짓기 위해 대화도 많이 했고 세세한 결정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화와 결정들은 집을 짓기 위한 것에만 국한되지는 않았습니다. 막히는 고속도로를 타고 오며 세상에 대한 의심 섞인 피로한 대화가 아닌, 우리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 희망섞인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집을 완성하기까지 오갈 수많은 대화와 결정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모습을 많이 바꾸게 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예비 건축주가 감사한 마음을 담아 올립니다.
상담이 무언가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결론을 조만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분간 편히 취미생활에 집중하시어요. ㅎ
문체와 문장 흐름이 아주 탁월합니다. ^^
저도 10년 늙을 각오하고 집 짓기 시작했고, 이곳의 도움을 받아 1년도 늙지 않고 완성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