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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평화를 품은 집'도서관을 중심으로 방송국 촬영이 왔습니다. 얼떨결에 인터뷰하다 보니 머릿속 이야기가 체계없이 나와 매끄럽지 못했어요. 생각을 글로 정리하여 pd분께 드렸습니다. 편집할 때 참고해 달라고 말이죠.
도서관이 방송의 중심이니 제 이야기가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겠고... 이미 정리해 본 글, 이곳에도 한번 올려 봅니다.
집 지으니 재밌는? 사건들이 많네요^^
‘집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는 건축물로서 ‘물리적 공간’. 두 번째로는 가족의 사랑과 추억의 저장소라는 ‘정서적 공간’. 마지막으로 가족과 건축물을 품고 있는 지리적 위치.
집을 지으며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딸이었고, 마지막까지 생각한 것도 딸이었어요.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랄까.
어떠한 집을 지을 것인가에 가장 결정적 실마리를 던져준 것은 당시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리틀포레스트’. 여섯 살 딸을 키우는 부모는 영화를 보며, 음식이 아니라, 친구들이 아니라, 도시와 시골의 무늬가 아니라, 건축물이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집에 집중했습니다. 주인공은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나 사회생활을 하다가 쓰러질 만큼 마음이 지치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포근한 집에 들어와 긴장을 풀고 에너지를 충전해요. 한껏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면 마치 전사처럼 씩씩하게 문을 박차고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별이에게 그러한 집을 선물해주자 했어요. 물론 그것은 건축물이란 물리적 공간에서 창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온전히 부모의 노력으로 빚어지는 것이죠. 올바른 사랑과 존중의 관계형성 속에서 건축물이란 물리적 공간은 포근한 사랑과 아름다운 추억이 스며들어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힘을 가집니다.
이 공간은 아파트일 수도 있고 서울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산 속 오두막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건축물이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부모의 노력으로 빚어진 정서적 공간의 느낌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공방과 작업실과 육아가 이뤄지는 집이란 공간들이 뿔뿔이 흩어져있던 당시, 우리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어디에 어떤 건축물을 지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건축물은 지리적 위치와 지형에 따라 규모와 모양이 달라지기에 제일 먼저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막연하게 ‘우리의 것이 좋아’ ‘자연이 좋은 거야’와 같은 주술적 읊조림을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고 궁합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우리 가족이 자연 가까이 살아야 겠다면 분명한 이유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이미 아이들과의 수업에서 찾은 상태였어요.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 대화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물질에 대한 관계로 이뤄져요. 물건은 소유대상이고, 소유물은 비교대상입니다. 나와 눈에 보이는 (물질)대상의 관계가 그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옆사람과의 관계 역시 그로부터 벗어나기 힘듭니다. 소유의 크기와 비교와 경쟁관계라는 정서적 공간. 그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면 삶의 무늬가 그렇게 형성될 것입니다.
한동안 공방을 잃어버려 어쩔 수 없이 수 개월 동안 DMZ 평화공원에서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야생동물과 벌레와 공원 한 구석에 사는 사슴과 계절마다 옷을 바꿔입는 자연만이 가득한 곳이죠. 수업을 하는 동안 아이들의 대화가 변했습니다. ‘내 것과 네 것’에 대한 이야기가 확연히 줄어듭니다. 자연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이 행복하길 바라는 아름다운 마음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생명에 대한 교감이 한 가득 차오릅니다. 과학적으로 생명이 없는 무생물에게도 생명을 부여하고 보이지 않는 영혼과 대화를 합니다.
그 수업의 경험을 통해 우리 부모는 별이를 자연 가까운 곳에서 키우기로 했습니다. 남들 눈에는 학군을 보지 않고 산골로 들어가는 위험한 모험으로 보이겠지만, 저희 부모의 판단으론 ‘가장 안전한’ 길이었으니까요.
자연이 가까운 터는 많았고, 현재 집 위치를 결심하는 데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이웃이었어요. 동화 속 사람들 같아요. 마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들어온 느낌이랄까요. 예를 들자면 이런 거예요. 집을 짓기로 결정하자 도서관 집장님께선 집 지으며 실수했던 것들과 미처 예상치 못했던 아쉬운 것들을 몽땅 내어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색내기 마련이지만 이곳 이웃들에게선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어렵게 얻은 걸 그냥 퍼 내주어요. 그러면서 서로간의 개인사, 소위 ‘안방 안’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선을 정확히 지키는 거죠. 반딧불을 위해 염화칼슘을 뿌리지 않는 분들, 그렇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만큼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이웃들이예요. 이곳에서 별이를 키우는 건 정말 축복입니다.
집을 짓기 위한 설계에서 남 다르게 결정한 것이 있다면, 과거 여성의 일로 치부받던 가사노동의 동선을 가급적 편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세탁기는 좁은 다용도실 안으로 숨기지 않고 현관 입구 측면에 노출시켰어요. 집에 들어오며 오염된 옷을 바로 벗어 넣을 수 있도록 말이죠. 소파와 텔레비전 보는 공간을 없애고 주방을 중심으로 두었어요. 벽 보며 설거지하지 않고, 별이와 대화하며 커다란 창밖의 풍경을 보며 설거지 합니다.
그리고 별이 방을 가장 크게 만들었습니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작은 방으로 내몰리지 않고,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는 걸 공간의 크기로 느끼길 바랐고, 사춘기가 되어 자신만의 공간이 중요해졌을 때 마음껏 누리기를 바랐고, 어른이 되어 사춘기 시절을 곱씹을 때 자신이 가족의 공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 느끼길 바랐습니다.
물리적 공간이란 건축에 들어어서면 ‘비용의 문제’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합니다.
집 때문에 고생하는 이야기를 추려보면 웃풍, 결로와 곰팡이, 누수, 난방비 폭탄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찬바람이 콧등을 스치는 방안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놀던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뜩이나 스트레스로 신체질병까지 달고사는 현대인에게 가중되는 스트레스는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몸과 마음을 편히 쉬기 위해 마련한 집 때문에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몸이 불편하고 나아가 건강까지 나빠진다면 커다란 문제가 됩니다. 때문에 단열과 기밀을 위한 설계와 재료선정과 시공 디테일엔 양보를 둘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공기질을 결정하는 열회수환기장치도 예외가 아니었죠. 외장재와 건물모양은 가장 저렴한 방향으로 결정하고 남은 비용은 모두 이곳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열적쾌적성과 건강한 공기질을 갖춤으로서 가족을 위한 ‘물리적 공간의 쾌적성’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곳이 ‘한국패시브건축협회’입니다. 협회의 지향점 역시 비슷했습니다. 건축주가 마음고생 하지 않고 집을 지어 쾌적한 공간에서 삶을 꾸릴 수 있기를 바라더라구요. 외단열을 통해 열대야를 줄이고, 에너지 소모량을 줄여 탄소배출을 줄이는 등 일련의 노력은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예의이기도 할 테고요.
감사합니다.~~
안방, 작은방의 단어와 고정관념 속의 공간 배치가 이런 생각을 방해하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